2020년 7월 28일 화요일

최승만 [崔承萬, 1897.1~1984.12.25]

최승만 [崔承萬, 1897.1~198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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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교육자. 안산시 고잔동 당골(堂谷) 출생. 1915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일본 동경관립외국어학교 노어과(露語科)에 입학하였다. 그는 당시 동경 유학생 중 지도적 위치에 있던 최팔룡(崔八鏞) 등과 1918년 여름방학 때부터 자주 만나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추진, 마침내 191928독립운동을 거사하는 데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

 

1918년 동경에서 [학지광(學之光)]의 편집위원, 이듬해 [창조(創造)] 동인(同人)으로 활동했고, 1922년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의 기관지 월간 [현대(現代)]의 주간(主幹)을 지냈다. 1930년 미국 스프링필드 대학에서 B·S학위를 취득하고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 기관지 월간 [청년(靑年)]의 주간을 지냈고, 1934[신동아(新東亞)]의 잡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368월 일장기 말소사건(日章旗抹消事件)으로 퇴직하였다.

 

해방 후에는 1945년 미군정청 교화국장, 1948~1952년 연희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던 중 1950년 한국전쟁으로 처와 세 딸이 납북되었다. 1951년 제주도지사, 1952년 제주대학 초대학장을 거쳐 1954년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 대한소년단 부총재, 1962년 중앙여고 이사, 1963년 감사를 지내는 등 교육사업에 투신했고, 1966년 동경에서 한국기독교청년회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귀국, 1984122587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언론인교육가. 일제강점기에 기독교청년회(YMCA)와 여러 잡지의 발행에 관여했으며 815해방 후에는 교육가로 활동했다. 본관은 해주(海主). 호는 극웅(極熊)극광(極光). 아버지는 문현(文鉉)이다. 보성중학교와 경성 중앙YMCA 영어과를 졸업했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외국어학교 러시아과에 입학했다.

 

1918년 도쿄 조선유학생학우회에 참여하여 편집위원으로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의 발행에 관여하는 한편, 유학생들의 문예잡지였던 [창조]의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1923년 도쿄 도요대학[東洋大學] 인도윤리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29년까지 도쿄 조선YMCA 총무로 활동했다. 19298월 미국으로 건너가 스프링필드대학에서 수학했다. 193010월 귀국하여 조선YMCA의 기관지인 [청년]의 주간을 맡아보다가 19311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조선YMCA 총무로 활동했다. 1934년 귀국하여 [동아일보] 잡지부장과 [신동아] 주간을 역임했다.

 

815해방 후 한국민주당에 참여했고, 미군정청 문교부 교화국장과 제주도지사를 역임했다. 그 뒤 연희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인하대학교 교수와 제주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이화학당, 성균관대학교, 중앙여자중고등학교, 근명상업중고등학교 등의 재단에 관여했다.

 

언론인교육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출생. 장훈초등학교를 거쳐 1915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동경관립 외국어학교 노어과(露語科)에 재학하던 중 유학생 최팔용(崔八鏞) 등과 독립운동을 추진하여 2·8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유학생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동경 유학생 학우회의 기관지인 [학지광(學之光)]의 편집위원과 [창조(創造)]의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1922년에는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의의 기관지 [현대(現代)]의 주간(主幹)을 지냈다.

 

1930년 미국 스프링필드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동아(新東亞)]의 잡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을 계기로 퇴직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교화국장을 지내고 1948년 연희대학 교수, 1951년 제주도지사, 1952년 제주대학 초대 학장, 1954년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2년 대한소년단 부총재, 중앙여자고등학교의 이사와 감사를 지냈으며, 1966년 일본에서 한국기독교청년회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최승만의 비망록이 전하고 있다. 비망록에는 어렸을 때 정동예배당 유년 주일학교 생활과 함께 한일강제병합의 경과,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 중학교 때의 사상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밖에 YMCA 영어과에 편입하여 졸업한 일, 시골 생활을 하면서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동경외국어학교에 다니면서 2·8독립선언에 참가했던 일 등을 상세하게 남기고 있다. 동경 YMCA에서의 활동과 사업, 관동대지진 및 좌익계 인물에 관한 글, 김지섭이봉창양근환의 의거 등과 만주 생활과 8·15해방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저서<극웅필경(極熊筆耕)>(1970) <바르고 옳게 살자>(1983)

유고<나의 회고록>(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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